‘룸살롱’도 ‘경기 전날 술판’도 없었다…묻지마 폭로의 씁쓸한 결말

‘룸살롱’도 ‘경기 전날 술판’도 없었다…묻지마 폭로의 씁쓸한 결말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일주일 동안 야구계를 발칵 뒤집었던 이른바 ‘WBC 음주 사건’이 일단락됐습니다. 7일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 상벌위원회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 음주로 물의를 빚은 김광현(SSG), 이용찬(NC), 정철원(두산)에게 사회봉사와 제재금을 부과했습니다. 제기됐던 여러 의혹 중에선 ‘경기가 없는 날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것만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고급 룸살롱에 갔다는 의혹이나 경기 전날 음주 의혹, 사흘 연속으로 술집을 찾았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번 상벌위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불만을 제기합니다. ‘크보가 크보했다’고 비아냥대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러나 KBO로서는 잘못의 정도와 법리에 맞게 최선의 결과를 끌어냈다고 봐야 합니다. KBO 조사 결과 드러난 선수들의 잘못은 ‘국제대회 기간 외부 음주’ 뿐인데, 이것만으로 출전정지와 같은 중징계를 내리기엔 명분이 부족합니다. 또 국가대표팀에서 생긴 문제를 갖고 KBO리그 소속팀에 피해가 돌아가는 징계를 내리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리그에선 선수 관리 책임이 소속팀에게 있지만, 일단 대표팀에 차출되면 그 책임은 KBO의 몫입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만약 징계를 한다면, 리그가 아닌 국가대표 자격정지 같은 형태가 돼야 한다”는 사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세 선수는 이미 6월 1일 이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당분간 경기 출전이 어려운 처지입니다. 여론 눈치를 보느라 명분도 없고 근거도 부족한 중징계를 내리는 대신,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시작부터 여론재판 양상을 띠었습니다. 처음 폭로를 터뜨린 유튜브 채널의 전신은 그간 여러 연예인과 유명인 대상 무차별 폭로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폭로 가운데는 나중에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으로 드러난 게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 폭로가 나왔을 때 야구계에선 ‘사실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 선수의 음주 시인으로 인해 폭로 내용의 일부가 진실로 밝혀지면서, 나머지 의혹까지도 전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동안 일부 선수의 음주운전, 일탈행위로 야구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의 적극적인 해명과 KBO 조사를 통해 폭로 내용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와 술을 마셨다는 폭로부터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선수들이 간 곳은 일본의 대중적인 주점인 ‘스낵바’로, 한국적인 정서로 봐도 룸살롱에 비할 만한 장소는 아닙니다. 일본을 자주 오가는 야구 관계자는 “스낵바는 일본에서 상당히 대중적인 술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룸살롱하면 떠오르는 퇴폐적이고 음침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로 치면 동네 호프집에서 종업원들과 대화하면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월 9일 호주전과 10일 일본전을 앞두고 밤새 술을 마셨다는 폭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KBO에서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 김광현은 선수단이 도쿄로 이동한 7일과 일본전이 끝난 11일 새벽에 해당 스낵바를 이용했습니다. 정철원은 11일 김광현과 함께 스낵바에 들렀고 이용찬은 11일 두 선수와는 별개로 같은 스낵바에 방문했습니다. 이는 KBO가 특정된 해당 업소 관리자에게 유선상으로 출입 일시, 계산, 종업원 동석 여부를 확인하고 선수들이 제출한 카드명세서까지 확인해 얻은 결론입니다. 사흘 연속 술자리를 가졌다는 폭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관계자는 “만약 경기를 앞두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다니는 선수가 있었다면, 다른 선수들이 모를 수가 없다. 진작에 선수단 사이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표팀엔 선수들만 있는 게 아니라 코칭스태프, KBO 관계자, 트레이너, 여행사 관계자들도 함께 이동한다. 유흥업소에서 밤샘 술판을 벌인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도쿄 아카사카에는 대표팀 외에도 야구계와 미디어 종사자, 연예 기획사 관계자 등 한국에서 온 ‘보는 눈’이 많았습니다.

애초 ‘3인방’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건 1) 룸살롱에서 2) 여자 종업원과 동석해 3) 경기 전날 밤새 술을 마셨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 아님’으로 기각되면서 팩트는 ‘국제대회 기간 음주’만이 남았습니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도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 한 대표팀 코치는 “정 술이 마시고 싶으면, 밖에 나가지 말고 방에서 맥주 한 잔 정도만 하라고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비난과 처벌은 어디까지나 잘못한 만큼만 주어져야 합니다. 지난 일주일간 세 선수가 경험한 비난과 수모는 지은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불거졌던 ‘대구 FC 할로윈 방역수칙 위반 의혹’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한 스포츠 에이전트는 “당시 한 인터넷 게시판에 축구선수 4명의 사진과 함께 ‘마스크를 벗고 방역 지침을 위반했다’ ‘취해서 추태를 부리고 소리 지르고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와 큰 논란이 됐다. 거센 비난 여론에 소속 구단과 선수가 사과문을 게재하고 연맹 상벌위에서 징계까지 내렸지만, 나중에 허위사실로 밝혀진 바 있다”면서 “근거 없는 폭로로 선수들이 입은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한 야구인도 “KBO 조사 결과대로라면 여성 접대부와 술을 마시거나 경기 당일 마셨다는 폭로는 거짓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처음 의혹을 제기하고 폭로한 쪽에서는 왜 아무 말이 없나”라고 비판했습니다.

선수협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법무법인 지암)도 SNS(소셜네트워크)에 쓴 글에서 “WBC 음주선수를 찾아서 벌하라고? 지금 KBO에는 조상우, 이영하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불법행위가 있었으면 모르되 자극적인 룸살롱, 접대부 단어를 사용하면서 확인되지도 않는 사실로 술집에서 술을 마신 선수들을 처벌하라고 한다. 대회기간 중 술집에서 술 마신 행위는 가십거리는 될 수 있지만 가십거리로 선수를 징계해서는 안 된다. KBO는 애초에 이런 무고성 주장에 대해서 관심을 끊어야 한다. 증거를 가지고 민원을 정식으로 넣든지 해야지 불쑥 튀어나온 자극적인 기사만으로 징계를 전제로 조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오히려 무고성 주장으로 피해를 보는 선수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보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김 변호사의 뼈있는 지적입니다.

세 선수가 상벌위에 출석한 7일 KBO 야구회관 1층 로비는 마치 검찰청 앞을 방불케 했습니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세 선수는 검은 정장과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비리 정치인이나 마약 연예인이 소환되는 장면으로 착각하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영웅이 될 수도 있었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죄인처럼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은 앞으로 국가대표가 될 선수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KBO는 상벌위 결과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과 경기력을 보인 2023 WBC 대회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음주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 드린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국가대표 선수들의 진짜 ‘죄’는 ‘음주 논란’이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과 경기력’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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