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X유망주] SK 김광현의 조언, "생각의 차이가 프로를 만든다."

[프로X유망주] SK 김광현의 조언, "생각의 차이가 프로를 만든다."

전수은
전수은
베이스볼코리아 매거진 커버 촬영 중인 덕수고 정구범과 SK 와이번스 김광현

#에이스는 외롭다. 홀로 선 마운드하며 등 뒤에 버티고 있는 동료들 그리고 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기대감까지. 그런데도 에이스는 이 모든 걸 이겨내야 한다. 그게 에이스의 숙명이다. SK 와이번스 ‘에이스’ 김광현도 덕수고등학교 3학년 ‘에이스’ 정구범을 처음 본 순간 후배가 짊어질 에이스의 숙명을 직감하지 않았을까.

올해 신인 드래프트 좌완 최대어로 평가받는 정구범. 중학교 시절 미국 유학 경력으로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명실상부 고교 야구 최고의 좌완 투수로 손꼽힌다. 올해(8월 16일 기준) 7경기에 등판한 그는 1승 36탈삼진 6볼넷 평균자책 1.29로 기대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신장 183cm-체중 75kg의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정구범은 김광현의 어린 시절과 ‘데칼코마니’다. 김광현 역시 인터뷰 내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았다며 놀라워했다. 정구범 역시 자신의 우상이자 KBO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를 앞에 두고도 두려움 없이 질문 세례를 쏟아냈다. 더불어 대답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현(現) 좌완 에이스와 KBO리그 미래를 책임질 신(新) 좌완 에이스의 대화를 ‘베이스볼코리아’가 엿들었다.

SK 와이번스 김광현(사진=조문기 작가/ @sidekickmoon)

김광현(이하 김): (정)구범아 너 체중이 어떻게 돼?

정구범(이하 정): 지금 75kg 정도 나가요.

김: 나도 고등학교 3학년 때 그 정도 체중이었어. 그때 72kg정도 였는데. (놀라워하며) 신체조건도 그렇고. 나랑 정말 비슷해(웃음)

정: 겨울에 80kg까지 찌웠는데 시즌 시작하고 많이 빠졌어요. 살찌우는 게 이렇게 힘든진 몰랐어요.

김: 학창시절엔 쉽지않지. 근데 프로팀에 오면 금방 찔꺼야. 나도 그랬으니까.

정: 프로는 훈련이 적어서 그런가요.

김: 그건 절대 아니야(웃음).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훈련 없인 불가능해. 대신 모든 훈련이 과학적이고 식단도 체계적이라 금방 살이 찌더라고.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 선배도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요.

김: 난 진짜 (스트레스가) 심했지. 너보다 훨씬 더 말랐던 것 같아. 넌 야구 잘 할 몸인데? 내가 어느 정도였냐면 고등학교 때 코치님들이 운동하면 살 빠진다고 훈련까지 빼줄 정도였어. 내 일과는 엄청나게 큰 그릇에 담긴 밥을 다 먹어야 시작됐어. 그래야 집에도 갈수 있었고(웃음). 상황이 그 정도가 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더 빠지더라고. 다행히 프로팀에 와서 트레이너 코치님이 시키는 대로 운동하고 끼니마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으니까 저절로 살이 쪘지. 그렇게 하다 보니 구속도 자연스럽게 올라왔고.지금 구속은 얼마정도 나와?

정: 145~6km/h정도요.

김: (깜짝놀라며) 진짜? 나는 고등학교 때 142km/h정도 던졌어. 사실 최고 구속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1회부터 6~7회까지 꾸준히 내 공을 던지느냐가 더 중요해. 들을수록 나랑 비슷한 점이 많네.

정: 만약 프로에 간다면 이 체중으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김: 나도 첫 해, 전지훈련 때만 해도 너무 말라서 걱정이었는데 잘 먹고 많이 뛰다 보니 시즌 들어가서 150km/h가 찍힌 거야(웃음). 프로 입단 뒤엔 첫 스프링캠프가 정말 중요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을 던질 수 있었고. 너도 입단하고 난 뒤에 팀 훈련 프로그램만 잘 따라가면 충분히 잘 할수 있을 거야.

덕수고 투수 정구범(사진=조문기 작가 @sidekickmoon)

정: 첫 스프링캠프는 어떠셨나요.

김: 처음 캠프에 갔을 땐 20살 넘게 차이나는 선배도 계셨고. 스스로 많이 위축돼 있었지. 또 신인이다보니 주목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부담감이 컸어. 그럴 땐 훈련에 더 집중하는 게 한 가지 방법이었고. 캠프 땐 신인들이 배우지 말아야 할 이상한 행동만 조심하면 돼(웃음).

정: 퓨처스리그도 그렇고 프로의 벽은 정말 높잖아요. 저도 그 벽을 넘을 수 있을까요.

김: 나도 첫 시즌엔 (야구를) 정말 못했어. ‘아. 나는 안 되는구나’하는 좌절감도 느껴봤고, 보이지 않는 벽같은 게 보이더라고. 그때 ‘이게 프로구나’싶었지.

정: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김: 더 잘해야겠단 생각을 버렸어. 그리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거 하나만 확실하게 어필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았던 밸런스를 떠올리려고 노력했고. 프로 무대에선 선배와 후배라고 생각하면 지고 들어가는 거야. 내가 제일 잘했던 시기의 생각과 느낌을 떠올리고 상대 타자는 선배가 아닌 같은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던지니까 잘 풀리기 시작했어.

정: 신인 때부터 주목 받으셨잖아요. 그런 관심이 슬럼프로 이어지거나 하진 않았나요.

김: 외부의 관심이 영향을 줄 순 있어. 부담감이 크면 일단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봐야지. 방법은 하나뿐이야. 최대한 빨리 떨쳐내고 위축되지 않는 게 중요해. 위축되는 순간 마운드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어. 성적이 좋지 않을 땐 언론과 주변 이야기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는데 프로 선수는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야 해. 인정할 건 인정하고 쿨(COOL)하게 넘어가는 거지. 중요한 건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결정한 부분을 밀고 나가는거야. 그래야 결과를 빨리 인정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거든.

정: 프로는 참 어려운 곳 같아요.

김: 쉬우면 프로가 아니지(웃음). 그냥 ‘심플’하게 생각해. 난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미래를 꿈꾸는 젊은 에이스 정구범(사진=조문기 작가 @sidekickmoon)

정: 항상 팀‘에이스’셨잖아요. ‘에이스’로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김: 고등학교 땐 ‘에이스’라기보단 그냥 자주 던지는 투수 정도로 생각했어. 그런데 프로에 와선 ‘에이스’라는 단어가 부담으로 다가왔지. 모두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 한편으론 '내가 잘 던지고 있으니까 그만큼 관심을 받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더라. 어릴 땐 무조건 이겨야 한단부담감이 컸는데 이젠 경기 승패를 떠나 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단 걸 느꼈어. 내가 최선을 다해 던진다면 경기에 지더라도 팬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정: 팀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아요. 투수는 야수들을 믿어야 하는 자리니까요.

김: 그렇지. 잘아네(웃음). 투수란 포지션은 야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자리잖아. ‘에이스’란 자리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 동료들이나 팬들에게 큰 도움을 받는 자리니까. 선발 투수만 잘한다고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잖아.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고 야수들이 잘 막아주고 불펜 투수들이 점수를 막아줘야 해. 팬들 또한 마찬가지야. 그 응원이 나를 더 힘나게 하거든. 경기가 끝나면 항상 팀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물론 실책이 나올 땐 가끔 화나기도 하지만(웃음). 그럴수록 더 티를 안 내고 힘내라고 손뼉을 쳐줘야 해. 투수가 서는 마운드가 가장 높은 곳에 있잖아. 다들 투수만 보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안 나왔고 인상을 쓰면 야수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단 걸 항상 생각지.

정: 위기상황이나 중요한 경기에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선배도 긴장하시나요?

김: 나는 어떤 경기든 약간의 긴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긴장을 조금은 하되 그 긴장을 풀어줄 방법을 계속 찾았지. 정말 큰 위기일 땐 점수를 준다는 생각으로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편이야. 가장 중요한 건 초구 스트라이크. 점수를 줘도 상관없으니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공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도록 노력해봐.

정: 프로에 입단 했을 때 가장 많이 도와주셨던 분은 누구신가요.

김: 프로팀에 입단하면 감독님부터 코치님, 그리고 선배들까지 많은 조언을 해주셔. 근데 참 아이러니한게 내가 안될 땐 그런 조언들마저 다 꾸지람으로 들리거든. 결국,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싸움인거야. 예를 들면 변화구를 던질 때 ‘릴리스 포인트’를 앞에 두고 던지라잖아. 그땐 ‘난 제대로 던지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떡하란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럴 땐 ‘나 안 해’가 아니라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 안 되면 과감하게 포기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 부분들이 지금의 내 경험치가 됐다고 봐. 일단 해보고 이게 내것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는 거지. 넌 결정구가 뭐야?

정: 스플리터요.

김: 맞아. 주위 사람들이 네 슬라이더를 높이 평가해도 본인이 스플리터를 잘 던지면 그게 주 무기인거야.자신있는 스플리터를 밀어붙이는 동시에 주위에서 슬라이더에 대한 평가를 좋게 하니까 또 던져보는 거야. 뭔가 좋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엔 계속 스플리터를 밀고 나가는 거지.

정: 예. 저도 뚝심있게 해볼게요.

김: 그런 마인드가 중요해(웃음)

정: 평소 몸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김: 처음엔 주변에서 시키는 운동을 다했어. ‘운동 열심히 안 한다’는 소릴 들을까 싶어 멋도 모르고 2년 차 때까진 진짜 힘들게 훈련했지. 신인 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거든. 혹 나약한 선수로 보일 수 있으니까. 2~3년 차까진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보면서 나한테 맞는 운동법을 찾는 게 좋아. 혹시 몸에 무리라도 오면 코치님께 꼭 말하고.

SK 와이번스 김광현이 말하는 '에이스의 책임감'(사진=조문기 작가 @sidekickmoon)

정: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만 해도 여전히 아마추어 선수처럼 행동했어. 야구도 마찬기자였고. 한 번은 1군에서 던지다가 2군으로 내려왔는데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 부끄럽기도 했고. 그리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더라. 그간 1군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생겼던 조바심, 긴장감, 부담감 같은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봤어. 막연히 잘해야겠단 생각이 내 발목을 잡았던 거야. 결국 프로와 아마추어는 생각의 차이 아닐까. 더는 잃을 게 없단 생각으로 편하게 던지기 시작했는데 이후에 모든 게 편해졌어. 그때 조금은 ‘나도 프로선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난 박경완 코치님의 조언도 큰 힘이 됐어.

정: 어떤 말인가요.

김: 지금은 내가 던지고 싶은 구종을 언제든 요구할 수 있지만, 그땐 신인이라 그러지 못했거든. 하루는 박코치님이 경기 전에 날 부르시더니 ‘오늘은 고개 한 번 돌리고 네 맘대로 던져봐’라는 코멘트를 남기셨어. 한 번 두 번 고개를 젓다보니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난 거야. 그땐 포수가 친구니까 내가 자신있는 공 위주로 많이 던졌거든.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던지고 싶은 공을 마음대로 던지니 야구가 너무 재미있는 거야.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좋기도 했고. 그 이후엔 야구가 잘 풀렸어. 요즘이야 신인투수도 ‘이거던지고 싶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대잖아. 선배 포수들도 웬만하면 다 받아주고. 오히려 그런 의사 표현을 기특하게 생각해. 너도 포수에게 자신 있게 니 생각을 전달한다면 서로 더 편안해질 거야. 지금도 그때 박 코치님과의 호흡을 떠올리곤 해. 내겐 너무 큰 행운이었어

정: 지난 해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가 생각나요. 그때 선발 등판 후 이틀만에 (6차전에) 다시 등판하셨잖아요. 그것도 마무리 투수로. 짧은 휴식기였지만, 구속도 150km/h 넘게 나왔고. 정말 멋있었어요.

김: 보통 선발등판하고 하루 쉬면 이튿 날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잖아(웃음). 공은 전력으로 던지기 힘들지만, 2일 쉬고 3일째엔 보통 불펜 투구 정도는 하거든. 사실 고등학교 땐 매일 던져서 (웃음). 나는 딱 그날이 불펜 투구를 하는 날이었어. 차라리 불펜에서 투구하지 말고 실전 경기 때 투구를 하자는 생각으로 기다렸지.

정: 정말 멋있었어요.

김: 멋있긴(웃음). 한국시리즈 땐 2만이 넘는 관중이 구장을 꽉 채워. 그땐 가만히 서 있어도 온 몸에 닭살이 돋아. 힘이 안 생길 수가 없지. 고등학교때 느꼈던 긴장감과는 차원이 달라. 팬들의 응원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초인적인 힘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너도 언젠가 그런 큰 무대에 서게 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거야. 너 또한 나처럼 그런 큰 경기에 오르는 투수가 되길 응원할게. 구범아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 파이팅!

* 아마야구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주신 SK 와이번스 김광현 선수와 SK 구단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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