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인터뷰] 장현석 “만약 미국 간다면…3년 안에 빅리그 마운드 밟아야죠”

[BK 인터뷰] 장현석 “만약 미국 간다면…3년 안에 빅리그 마운드 밟아야죠”

편집부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가 있다: 좋아하는 선수에게 사인받고, 함께 사진 찍고,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친밀한 대화와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상상 말이다.

NC 다이노스 꼬마팬 시절 장현석도 같은 상상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장현석 어린이는 그날도 마산야구장 앞에서 NC 선수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운이 좋게 사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진까지 찍어주면 참 좋을 텐데. 상상만으로도 절로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소년의 바람은 조금 뒤 현실이 됐다. 하지만 행운이라기보다는 아프고 당황스러운, 불운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던 NC 선수 이호준(현 LG 코치)의 자동차 바퀴가 꼬마 장현석의 발을 밟고 지나간 것이다. 경찰청이 집계한 자동차 접촉사고 통계(2016년 기준) 21만 5천 건 가운데 목 부상은 46.6%, 머리와 얼굴 27%, 허리 8.7%, 다리 8.7%, 팔 3.5% 순이다. 발을 밟히는 사고는 공식 집계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게다가 운전자가 스타 야구선수고 피해자가 어린이 팬인 상황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제가 차에 너무 가까이 붙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이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장현석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공식 프로필에 따르면 장현석의 키는 190cm다. 꼬마팬 시절 거인처럼 보였던 이호준(187cm)보다 3cm나 커졌다. “그 당시 NC 선수들 차량번호까지 외울 정도로 팬이었습니다. 야구장 앞에서 보고 있는데 이호준 선수 차가 보이더라고요. 제일 먼저 뛰어갔죠. 사인받으려고 달려갔는데, 후진하는 차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타이어가 발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발을 밟히는 순간은 고통이었지만, 이윽고 장현석은 NC 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교통사고 피해자가 됐다. 놀란 이호준은 곧장 장현석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자칫 어린이 팬이 다치진 않았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어린 친구가 울지도 겁내지도 않고 씩씩하게 검사받는 모습이 기특했을까. 이호준은 꼬마 팬과 부모를 향해 ‘이런 성격이면 야구를 해도 잘할 것 같다.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격려를 전했다. 며칠 뒤엔 장현석을 야구장에 초대해 야구용품도 선물했다. 그저 야구 보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기 좋아했던 개구쟁이 소년의 가슴에 야구선수라는 꿈이 마치 ‘교통사고’처럼 찾아왔다. 장현석은 이듬해부터 바로 리틀야구단 선수로 등록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현재 KBO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로 성장했다.

특급 유망주 장현석

“엄마, 난 꼭 야구로 성공하고 싶어” 중학생 장현석의 다짐

“원래부터 운동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장현석의 어머니 김현숙 씨는 “현석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워낙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 넘치는 에너지를 쓸 곳은 운동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축구로 시작했다. 이따금 아버지가 속한 사회인 야구팀 경기에도 따라다녔다. 그러다 이호준 코치의 권유를 계기로 진로를 야구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KBO리그 통산 2,053경기 1,880안타 346홈런에 빛나는 대선수의 눈은 정확했다. 장현석은 리틀야구 무대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장현석을 지도한 김문한 함안리틀 감독은 “현석이가 처음 야구단에 들어와 외야수를 보는데, 어깨가 정말 남달랐다. 공을 던질 때 탄성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고무줄 튕기듯이 쏘는 능력이 좋았다. 달리는 것만 봐도 몸의 탄력이 남달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히 이 친구는 나중에 크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습니다.” 김 감독의 회상이다.

“지금까지 봐온 어떤 투수보다도 몸의 밸런스가 좋은 선수입니다. 현역 시절을 돌아봐도 이 정도 밸런스를 유지하는 투수는 못 본 것 같아요.”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 출신으로 지금은 마산용마고 투수들을 지도하는 조정훈 코치의 말이다. “힘으로만 던지는 투수도 있고 밸런스로만 던지는 유형도 있는데, 현석이는 힘과 밸런스를 모두 활용해서 던지는 스타일입니다. 두 가지를 다 활용하는 투수는 흔치 않아요.”

KBO리그와 미국 마이너리그를 경험한 이지모 부산 가야베이스볼아카데미 코치도 “현석이는 몸이 유연하고, 자기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는 운동능력이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이 코치는 2년 전 만난 장현석에게 드라이브라인 훈련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현석이는 발목 힘도 타고났어요. 순간적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 스피드가 엄청납니다. 빠른 공을 던지는데 최적화된 체형도 장점입니다.”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한몸에 지닌 장현석은 야구 외에도 모든 운동부가 탐내는 인재였다. 어머니 김현숙 씨는 “경주중학교 시절 다른 종목에서도 스카우트 제안하는 곳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현석은 야구 하나만 바라봤다. 김 씨는 “우리 아들은 야구에 미쳤다”며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거에요. 어느 날 제게 진지하게 얘기하더군요. ‘엄마, 난 야구로 꼭 성공하고 싶어’라고요. 운동을 하기 전엔 그저 어린 애로만 봤는데, 야구를 하면서 자기가 꿈을 설정하고 목표로 향해 가는 게 너무 기특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야구 연구만 해요. 야구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종목과 트레이닝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김문한 함안리틀 감독은 “현석이는 야구 열정이 가득한 친구였다”고 떠올렸다. “보통 아이들에게 러닝을 시키면, 하다가 힘들면 요령을 부릴 때도 많아요. 그런데 현석이는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자진해서 더 뛰겠다고 하는 친구였습니다. 기록이 맘에 안 든다며 한 번만 더 뛰겠다고 하곤 했어요.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였죠.”

고교 졸업반인 지금도 장현석은 야구 얘기만 나오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장현석의 절친이자 라이벌인 부산고 투수 원상현은 “현석이는 장난기가 많고 유쾌한 친구”라면서도 “운동할 때는 사람이 바뀐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그런 현석이를 보면서 나도 경쟁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진민수 감독도 “승부욕이 매우 강한 친구다. 지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 경기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이 강해서, 오히려 벤치에서 살살 하라고 주문할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진민수 용마고 감독

“이호준 코치님 못 만났다면? 그래도 야구했을 것”

190cm의 농구선수급 장신, 그리고 최고 156km/h에 달하는 강속구. 이 숫자들은 수많은 유망주 사이에서 장현석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다. 메이저리그 A구단 동아시아담당 스카우트는 장현석의 신체조건에 관해 “탈아시아급”이라고 표현했다. “키만 큰 게 아니라 근육,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좋습니다. 스카우트라면 누구나 이런 체형의 투수를 선호할 겁니다.”

중학생 때 장현석을 지도한 임원수 경주중학교 감독은 “처음 야구부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키가 크진 않았다”고 떠올렸다. 임 감독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1년을 유급했는데, 그러면서 키가 거의 10cm가량 자랐다. 키가 커지면서 볼 스피드도 140km/h 중반대까지 올라왔다. 이미 2학년 때 144km/h를 던졌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용마고에 진학한 장현석은 브레이크도 과속 방지턱도 없는 질주를 거듭했다. 1학년 때 최고 150km/h를, 2학년인 지난해 최고 156km/h를 던졌다. 그리고 올해는 꿈의 영역인 160km/h에 도전한다.

“강속구는 투수에게 최고의 선물이죠. 구속을 올리고 싶지만 그렇게 못 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장현석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비결이요? 빠른 몸통 회전이 아닐까요. 2년 전부터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으로 훈련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구속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작년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기대하지만요.”

강속구와 제구력이 반비례한다는 일반인의 상식은 장현석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입을 모아 “장현석 정도면 제구력도 나쁘지 않다”고 인정한다. 조정훈 코치도 “자기 구속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는 투수”라고 말했다. 여기에 변화구를 던지는 손 감각도 갖추고 있다. 진민수 감독은 “1학년 때부터 투심 패스트볼, 커터를 던지기에 자제하라고 주문했다. 좋은 속구가 있는데 굳이 손장난으로 어렵게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미국 A구단 스카우트는 “장현석의 슬라이더가 향후 플러스 피치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한 몸에 겸비한 장현석은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강력한 전체 1순위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2년전 진흥고 문동주(한화)가, 지난해 덕수고 심준석(피츠버그)과 서울고 김서현(한화)을 향했던 스포트라이트가 올해는 장현석에 쏠릴 전망이다. 가는 곳마다 국내외 스카우트와 팬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수많은 눈과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던지게 될 것이다. 포털 뉴스란이 장현석 이름 석 자와 최고구속, 똑같은 증명사진으로 도배되는 상황도 예상된다. 평범한 고교생 선수에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장현석은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저에 관한 기사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요. 친구들이 DM으로 ‘네 기사 올라왔다’ 하고 보내주면 올라왔구나 하고 말지, 굳이 검색해보면서 기사 내용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습니다.” 진민수 감독은 장현석의 가장 큰 장점이 ‘강한 멘탈’이라고 소개했다. “멘탈이 정말 강해요. 어떤 위기에서도 내가 막아낸다는 자신감이 있다. 웬만한 투수라면 ‘못 던지겠다’고 할 만한 상황에서도 자기가 던져서 막아내겠다고 합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면 그 상황을 오히려 즐길 친구에요.”

이호준 코치와의 운명적 만남은 어린이 야구팬 장현석을 관중석에서 마운드 위로 이끌었다. 이제 장현석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야 할 순간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 남아 KBO리그 전체 1순위 지명에 도전할지, 아니면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도전할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 자신의 운명은 물론 전체 신인드래프트 판도까지 크게 바꿀 수 있기에 장현석의 선택을 모두가 주목한다.

“어머니는 항상 제게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올 시즌 뒤 제가 한국에 남을지, 미국으로 떠날지도 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입니다.” 장현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약에, 만약 제가 미국으로 직행하게 된다면 3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 남는다면, 입단 첫해 스프링캠프 다녀오자마자 바로 1군에서 뛰고 싶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 이호준 코치 차에 발을 밟히지 않았다면, 그래도 야구를 하고 있을까요?’ 장현석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야구를 했을 겁니다!” 장현석에게 야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장현석의 전력투구

야구 안 할 때는 평범한 고교생

SNS에 사진 하나만 올려도 엄청난 화제가 될 정도로 야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나요.

(웃으며) 저에 관한 기사는 굳이 찾아보지 않고, 알게 돼도 듣고 흘리는 편이에요. 친구들이 보내주면 ‘올라왔구나’ 하고, 안 올라와도 그런가 보다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도 딱히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아요. 놀 때는 노는 것에만 집중하고, 운동에 관한 얘기는 밥 먹을 때만 잠깐 해요.

선수 중에는 누구랑 친해요?

학교 친구들이랑도 전부 친하고요, 요즘 매일 붙어 다니는 친구는 부산고의 (원)상현이에요. 개성고등학교의 (김)성은이랑 부산공고 김태희, 부산고 다니는 (서)영탁이랑도 친하고요. 다들 함안 리틀야구단 때부터 봤던 친구들이에요.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뭘 하는지 궁금합니다.

함께 영화도 보고, 밥도 먹어요. (영화는 어떤 거 봤어요?) 얼마 전에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봤어요. (남자끼리요?) 남자끼리는 아니죠. (손사래를 치며) 또 노래방에 갔다가 스크린 야구, 골프도 치고요. 그냥 같은 나이대 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지냅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도 뛰어야 하고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해서, 요즘엔 되도록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3학년이 됐습니다. 1학년이었을 때, 그리고 2학년 때와는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똑같이 지내고 있어요. 제가 최고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서로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팀플레이는 훈련 때 맞추면 되고, 팀워크도 저희끼리 두루두루 친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불화도 없어요. 자신이 맡은 바만 잘하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중학교 후배들의 증언에 의하면 굉장히 무서운 선배라던데요. (웃음)

누가 그런 헛소문을....(웃음) 지금은 활발하고 장난기가 많은 편이지만, 중학생 때는 과묵했고 잘 웃지도 않았어요. 주로 친구들이랑만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굳이 후배들을 먼저 터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진민수 감독님은 장현석 선수의 리더십을 기대하시던데요.

제가 우리 팀의 주축이고 매 경기에 나와서 공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려면 제가 친구들과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것도 맞는 것 같고요. 감독님께서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계세요.

베이스볼 코리아와 인터뷰하는 장현석

‘교통사고’를 계기로 시작한 야구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NC 다이노스를 좋아했고, 선수들의 차 번호까지 외울 정도로 마산 야구장을 자주 다녔어요. 선수들이 경기장에 출근할 시간이 되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사인을 받았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자동차에 너무 가까이 붙었다가 후진하던 이호준 코치님(현 LG) 자동차에 발을 밟히고 말았어요.

저런.

코치님이 바로 병원에 데려가 주셨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저보고 ‘넌 야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같은 성격이면 야구를 해도 잘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부모님께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반대하진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다들 반대했죠. 공부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왜 운동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공부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거든요. (웃음) 어머니께 별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았죠.

지금은 야구를 허락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어머니는 항상 제게 모든 것을 맡기세요. 올 시즌 뒤 제가 한국에 남을지, 미국으로 떠날지도 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고요.. 중학생 때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할지도 제가 결정했어요. 제가 어디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가라 하시고 어디 갈게요 하면 그러라고 하셨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지역을 신경 쓰지 않고 결정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때 고교 감독님들 사이에서 장현석 영입 경쟁이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저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중학교 시절에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까 테스트를 받는 게 아니면 보여줄 게 없더라고요. 마산용마고는 위치도 대구가 아니라 창원 쪽이라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서 완전히 배제한 상태였죠.

그런데 결국엔 용마고를 선택했습니다.

진민수 감독님과 두세 번 정도 만나서 이야기했거든요. 저는 항상 감독님 만나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그냥 감독님 하나만 보고 갔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잘생기셨잖아요. (웃음) 젊으시고 코치분들도 젊으셔서, 대화가 잘 되겠다 싶어서 마산용마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감독님 운이 좋다고 했는데, 초등학교-중학교 감독님들은 어땠나요?

함안 리틀야구단 시절에 만난 김문한 감독님은 공부하는 감독이셨어요. 저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항상 저희가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 운동하는 동안 만났던 가장 좋은 스승님이세요. 그리고 경주중학교 야구부 임원수 감독님은 사고뭉치였던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경기하다 보면 선수들끼리 ‘야지’도 주고 하잖아요. 당시 제가 다녔던 중학교가 포항 중학교와 라이벌 의식이 심했어요. 그래서 서로 일부러 몸에 맞추기도 하고 야유도 하면서 경기를 치렀는데, 그럴 때마다 뒷수습은 감독님 몫이었죠. 감독님은 저에 대해서 항상 좋게 말씀해주시고, 마치 아들처럼 애틋하게 대하셨어요. 제게 도움이 되고 잘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주셨어요. (뒤로 지나가는 진민수 감독을 보며) 그래서 저는 감독님 복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웃음)

장현석 선수에게 한국 야구계가 거는 기대가 큽니다. 특히 지난해 최고 156km/h를 기록한 패스트볼의구속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벌써부터 궁금한데요. 스스로도 강속구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것 같아요.

최고의 선물이죠. 구속을 올리고 싶지만 그렇게 못 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저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고 그 공으로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투수로서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속구를 던지는 비결이 있다면?

우선 몸통의 회전 스피드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투구 메커니즘을 위해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도 활용하고 있고,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는 중입니다. 여기에 몸통의 꼬임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훈련을 병행하다 보니 구속이 느는 것 같아요.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드라이브라인 훈련을 하는 이유는 투구 메커니즘과 타이밍을 잡기 위함이에요. 자세를 잡기 위한 목적의 프로그램인 것이죠. 그런 부분이 점점 잡혀 나가니까 실전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또 공을 던지기 전에 하는 워밍업 프로그램도 있어서, 캐치볼 전에 단계별로 빠짐없이 하고 들어갑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훈련하는 것과, 왜 하는지 알고 하는 훈련은 차이가 크잖아요.

맞아요. 중학교 때와 비교하면 같은 훈련이라도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알고 하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코치님의 지시에 ‘이게 맞겠지’ 생각하고 따랐거든요. 지금은 제가 야구에 관해 공부하면서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구속도 빨라졌고, 지금의 방향이 맞는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수정해야 할 부분은 수정하고, 보충해야 할 부분이 보이면 더 끌어당겨서 쓰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야구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배우고, 저희 학교에 오시는 트레이닝 코치님이 야구에 대한 지식을 전부 공유해 주세요. 학교 코치님들이 가르쳐주시는 방법도 전부 받아들이며 공부하고요. 그리고 요즘에는 인터넷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 보니 인터넷에서도 많이 찾아봐요. 또 제가 알고 지내는 형이 한 명 있거든요. 독립 야구단에서 뛰고 있는데 굉장히 똑똑하고 야구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 형이랑 한 번 대화하면 2시간에서 3시간은 야구에 관한 이야기만 나눠요. 그 형에게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이러한 노력이 작년에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면서 제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어요.

장현석 선수가 야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머리를 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머리를 비운다.

연습할 때야 당연히 여러 생각을 하며 훈련에 임해야 하겠지만, 실전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경기에 임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던져야 한다’, ‘이 타자는 어떻게 잡아야 한다’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갑자기 컨트롤이 흔들릴 수도 있고 방향성이 흐트러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냥 머리를 비우고 포수만 보면서 세게 던지는 편이에요. 전국대회에서도 그랬어요. 눈앞의 경기를 잡아야 다음 경기에서 무언가를 더 보여줄 수 있잖아요. 코치님께서도 항상 눈앞의 타자에게 먼저 집중하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리틀야구 때부터 강하게 공을 던지는 것에만 포커스를 뒀기 때문에, 자신 있게 하고 있어요.

평소에 훈련할 때도 세게 던져야겠다는 의도를 갖고 하나요?

아니요. 공을 보다 강하게 던지려는 시도는 구속 유지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하고 있어요. 제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피칭을 하는데 월요일과 수요일은 7~80% 정도의 힘으로만 던지고, 마지막 금요일에만 100% 전력 피칭을 하는 중이에요.

지금까지는 주로 좋은 얘기만 했는데, 혹시 기술적으로 좀 더 보완해야겠다 싶은 부분이 있나요?

일단 공을 다시 던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졌을거예요. 이제 리그전에 들어가면 경기에 꾸준히 나서면서 실전 감각을 다시 쌓아야 할 것 같아요. 공백이 길어지면 컨트롤이 무뎌지니까 그 부분도 바로잡아야 할 테고요. 팀플레이나 사인도 전부 숙지해야 하는데 시간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에이스라면 100구 이상도 던지고 연투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자신 있습니까.

연투 능력은 이전 경기서 공을 얼마나 던졌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투 능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공을 던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한 경기에서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진다 하더라도 컨디셔닝과 회복 부분 역시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경기의 후유증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감독님께서 평소에 관리를 잘 해주셔요. 위기 상황일 때 감독님께서 믿고 올려주시는 만큼 그 점에 대해 보답을 해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생각을 가지니까 경기도 더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제일 자신이 있는 변화구는 어떤 겁니까.

지금 던지는 변화구는 다 괜찮고 자신 있어요. 슬라이더가 가장 괜찮은 것 같아요. 옆으로 휘는 슬라이더와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질 줄 알아요. 최근에는 서클 체인지업도 많이 좋아졌고, 커브도 완성도가 높아졌어요. 그래도 (원)상현이의 변화구 완성도를 따라가기는 어렵지만요. 상현이는 체인지업이 정말 살벌하더라고요. 어제 전화 통화 때 변화구를 자랑하길래 창원리그 경기를 보러 갈 예정이에요.

장현석의 슬라이더가 일반적인 슬라이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립 부분에서 차이가 조금 있을 거예요. 던지는 방식도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공을 던질 때 다리를 딛는 순간 뒷다리를 돌리면서 상체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요. 수건 짜듯이 몸을 살짝 꼬는 거예요. 그리고 왼쪽을 열지 않고 막아놓은 뒤 오른쪽을 강하게 넘겨서 투구해요. 손이 앞을 볼 때 던지는 순간 밑으로 내리라고 배워서 그렇게도 던지는 중이고요.

보통 변화구 개발은 어떻게 하나요? 직접 던져보면서 익히는 방법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카메라나 트래킹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하던데.

요즘 미국 야구를 보면 우리나라랑 일본의 야구보다 더 많이 발전됐잖아요? 더 많이 연구됐고, 더 좋은 장비를 사용하고요. 저는 미국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프로에서 성공하려면 제구와 변화구를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기대치가 떨어질 거예요. 반대로 제가 열심히 한다면 지금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것이고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계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아마추어 선수잖아요. 프로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해 준다 못한다가 아니라, 그 기대치만큼 기량을 끌어올려야만 지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가치가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을 테고요. 그래도 부족하다고 충고해 주시는 분들만큼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활약해서 편안하게 행복한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현석은 올해 고교야구 넘버원 유망주로 꼽힌다.

“만약에 미국 간다면...3년 안에 빅리그 무대 밟는다”

작년에는 덕수고등학교 심준석과 서울고등학교 김서현의 경쟁 구도가 치열했어요. 누가 155km/h를 기록하면 다른 선수가 156km/h를 던지는 식으로요. 두 선수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나도 구속을 더 끌어올려야겠다’는 욕심이 생기진 않던가요.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김서현 선수는 중학생 때부터 공이 빠른 것을 알고 있었어요. 심준석 선수는 전국대회 때의 투구를 보고 굉장히 좋은 선수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선수를 의식한다고 해서 제가 구속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게는 어차피 1년이 더 남아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하게 구속 경쟁에 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다치면서까지 구속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작년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기대하지만요.

김서현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받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김서현 선수는 누가 봐도 전체 1번이었죠. 경기력과 실력,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던지는 폼도 부드럽고, 경기 운영 능력도 좋은 데다가 많은 경기에 등판하면서도 일관된 제구력을 보여줬으니까요. 작년의 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어요. (눈을 빛내며) 하지만 올해는 다를 겁니다.

문동주 선수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당시에도 그랬고, 작년의 심준석과 김서현도 경기 때마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리고 공중파 방송사까지 출동했잖아요.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이런저런 말이 나왔고요. 올해는 장현석 선수가 그 대상이 될 겁니다. 걱정되지 않나요.

저는 굳이 제 이름이 적힌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요. 친구들이 DM으로 ‘네 기사 올라왔다’ 하고 보내주면 올라왔구나 하고 말지, 굳이 검색해 보면서 기사 내용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장현석 선수 본인의 기량을 계속 성장시키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자신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야구선수라면 프로 무대는 밟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어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느 나라의 프로 리그에서 뛰는 것이 모든 아마추어 선수의 꿈이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게 야구이기도 해요. 운동밖에 모르다 보니 가끔 친구들이랑 한두 번 놀더라도 유일하게 계속하는 것은 운동인 것 같아요.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도 있다 보니 자극도 되고, 고등학교에 올라오기 전 구속에 대한 목표를 세웠던 것도 있었고요. 그리고 상현이랑 저랑 항상 라이벌 구도가 있었거든요.

황준서, 김휘건, 육선엽이 아니라 원상현이 라이벌이라고요.

예. 상현이랑은 구속도 구속이지만 누가 더 열심히 운동하는지에 대해 경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운동할 때만큼은 서로 스트레스받는다고 할 정도로, 정말 잡아먹을듯이 했어요. 놀 때는 친구지만 운동할 때는 라이벌이에요. 만약 작년 봉황대기 때 결승전에서 부산고와 만났다면 정말 치열했을 거예요.

장현석 선수가 본 원상현은 어떤 사람인가요?

운동할 때의 상현이는 정말 미친놈이에요. 미친 것처럼 열심히 운동하고, 시합 때는 운동할 때 보여준 미친 모습을 또 뛰어넘는 친구예요. 완벽주의자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엇을 해도 잘하려 하고 못 하는 것을 싫어해요. 피칭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울 때도 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진심도 크고요. 친구로서 본받을 점도 많아요. 그런 점도 있고 해서 상현이랑 저는 거의 매일 여자친구 급으로 자주 연락해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영화도 둘이 본 것 아닌가요?

절대 아니에요. (웃음) 아무튼 야구장 밖에서의 상현이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에요. 착하고, 순해요. 대신 야구장에만 나오면 돌변해요. 완전히 미쳐버리죠. 야구에 그렇게까지 진심인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절친인 장현석 선수가 매일 뉴스에 나오고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나오는데, 원상현 선수의 반응은 어떤가요?

정말 많은 자극을 받는 것 같아요. 저한테 ‘2024 신인 드래프트 전체 1번과 2번이 누구냐’ ‘1번은 너고 2번은 황준서라 하는데, 황준서가 아니라 나다’ 같은 이야기를 해요. 황준서 선수가 이번에 던지는 모습을 봤는데 황준서는 역시 황준서더라고요. 그래도 지금 페이스만 놓고 보면 이번 드래프트 전체 2번은 상현이가 될 것 같아요.

야구선수 장현석의 앞으로 목표를 들려주세요.

만약에, 만약 제가 미국으로 직행하게 된다면 3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고 싶어요. 솔직히 입단 1년 만에 빅리그로 올라가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고요, 지금 제 신체 나이도 어려서 힘들 것 같아요. 점점 몸이 커지면서 힘이 생긴다고 했을 때, 스물셋 정도가 되면 메이저 무대를 밟기에 좋을 것 같아요. 읽은 책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올해 스무 살이 되고 내년에 스물한 살이 될 테니까, 미국에 가게 된다면 2년에서 3년 안에 메이저 땅을 밟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 남는다면 프로 입단하고 스프링캠프를 다녀오자마자 바로 1군에서 뛰고 싶습니다. 2군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1군에 오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에디터: 최홍서, 배지헌

'베이스볼 코리아' 3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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