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오승환' 극약처방, 효과 있을까

'선발 오승환' 극약처방, 효과 있을까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이 오늘(5월 3일) 대구 홈에서 열리는 키움 히어로즈 전에 선발 등판합니다. KBO리그 통산 374세이브와 한미일 496세이브에 빛나는 최고 마무리 투수의 데뷔 첫 선발등판이라 더욱 주목을 끕니다. 이번 깜짝 선발 기용은 시즌 초 잇따른 구원 실패로 고개 숙인 오승환의 부진 탈출을 위한 극약처방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짜 선발처럼 긴 이닝을 던지는 것은 아닙니다. 60구 안팎만 던지고 내려오는 ‘한국식 오프너’ 역할이 될 전망입니다.

오승환은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전업 불펜투수로 활약했습니다. 통산 620경기를 전부 불펜으로만 던졌습니다. 일본프로야구와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선발로 던진 적은 없습니다. 데뷔 초기와 미국 시절 잠시 중간계투로 나왔던 걸 제외하면, 커리어 대부분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경기의 ‘처음’보다는 ‘마지막’에 최적화된 선수가 바로 오승환입니다.

다만 아마추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발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고교 시절엔 선발로 나온 경기가 9경기로 구원 등판(6경기)보다 오히려 많았습니다. 1998년 한서고 소속으로 총 5차례 선발 등판했고, 2000년엔 경기고 소속으로 4경기에 선발 출격했습니다. 완투패를 당한 기록도(1998 봉황대기, 8이닝) 완투승을 거둔 기록도(2000 대붕기, 7이닝 콜드게임) 있고 한 경기에서 136구를 던진 적도 있습니다.

전문 구원투수로 변신한 단국대 시절엔 총 48경기 중에 2경기만 선발로 나왔습니다. 마지막 선발 등판은 3학년 시즌인 2003년 4월 3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춘계리그 성균관대전으로 당시 오승환은 3.2이닝 동안 3피안타 3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이 등장하는 것만 봐도 ‘선발 오승환’이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짐작이 갑니다.

오승환의 선발 등판은 정현욱 투수코치의 제안으로 성사됐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 코치는 “나 역시 선수 시절 부진할 때 선발 등판한 적이 있다”며 “많은 공을 던지면 감각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오승환은 승부가 걸린 중요한 순간마다 등판하지 않았나. 선발로 등판하면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란 바람도 전했습니다.

오승환과 강민호의 승리 세리머니(사진=삼성)

하지만 오승환의 선발 등판으로 삼성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물론 구위와 건강엔 별 이상이 없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된 투수, 밸런스에 문제가 생긴 투수라면 환경 변화, 기분 전환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정현욱 코치가 말한 자신의 현역 시절 선발 등판도 이런 사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2012년 당시 정 코치는 만 34세로 하락세가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반면 올 시즌 오승환은 만 41세 노장으로, 역대 KBO리그에서 만 41세 이상 현역 1군 투수는 오승환 포함 단 10명에 불과합니다.

오승환의 최근 부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하락세가 올해 더욱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관록으로 버티긴 했지만, 지난 시즌의 오승환은 우리가 알던 그 오승환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오승환의 조정 평균자책은 125.9로 통산 기록(218.3)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를 남겼습니다. 올해는 이 수치가 89.1로 리그 평균(100)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트레이드마크인 ‘돌직구’의 위력도 예전만 못합니다. 올해 오승환은 패스트볼 평균구속 142.6km/h로 지난해(144.7km/h)보다 2km/h 가량 스피드가 느려졌습니다. 이는 리그 평균(143.5km/h)보다도 떨어지는 구속입니다. 속구 피안타율은 0.429에 달하고, 작년 84%였던 존 컨택율은 올해 89.7%로 치솟았습니다. 헛스윙률도 작년 24.4%에서 올해 22%로 하락했고, 타석당 탈삼진은 17%로 커리어 최저치를 찍고 있습니다(통산 29.2%). 9이닝당 피홈런 1.80개는 부상에 신음했던 2009~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런 가운데 1경기 선발 경험이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어쩌면 ‘오승환=마무리’라는 공식을 깨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인지 모릅니다.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오승환의 국내 복귀 이후 연도별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삼성의 결정엔 현실적인 고민도 작용했을 공산이 큽니다. 오승환은 2군에 내려보낼 수 없는 선수입니다. 삼성의 간판 프랜차이즈 스타로 올해 연봉만 14억원을 받는 덩치 큰 선수입니다. 부진하면 2군에서 재조정 시간을 갖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1군에 계속 머물면서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다 보니, 하다하다 결국엔 선발등판이란 고육지책까지 쓰게 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이런 해법이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솔루션이라 하긴 어렵습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오승환의 선발 출격 소식에 관해 “TV 야구 예능을 보는 느낌이다. 선수에게 문제가 있으면 이론적 근거를 갖고 정확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선발등판은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식이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야구단 출신 데이터 전문가는 골프에 빗대어 “아이언이 안 맞으면 하프스윙부터 다시 해봐야지, 드라이버 200개를 치면서 아이언 감을 찾으라니”란 말로 회의적인 견해를 내놨습니다.

실효성 유무와는 별개로, 오승환의 선발 등판은 그 자체로 야구팬들에게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될 전망입니다. 데뷔 초기 포심과 슬라이더 딱 2개로 리그를 평정했던 오승환은 일본과 미국 무대를 거치며 다양한 구종을 골고루 던지는 투수로 변신했습니다. 올 시즌엔 슬라이더는 물론 커브 구사율을 크게 높여 돌직구 일변도에서 벗어났습니다. 선발 등판에서 의외의 호투를 펼쳐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비관적인 예상을 잔뜩 내놓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등판을 계기로 오승환이 반등의 실마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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