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 심판’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 심판’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 때문에 수많은 직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과 유럽의 일자리 중 3분의 2가 인공지능에 영향을 받으며 이 지역에서 사람이 하던 기존 업무 중 4분의 1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무 및 경영 46%, 법률 44%, 건축 및 기술 37%가 자동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야구장에도 AI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직군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 심판들입니다. 이미 중계방송 기술의 발전과 비디오 판독의 도입으로 기계가 심판의 역할을 상당 부분 보완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이른바 ‘로봇 심판(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이 전통적인 구심의 역할을 대체하는 중입니다. 미국은 마이너리그에서 지속해서 로봇 심판의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한국도 퓨처스리그에서 4년째 테스트 중입니다. 올해부터는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로봇 심판을 활용하고 있는데, 여러 문제점도 있지만 여론의 반응은 우호적인 편입니다.

심판들은 “로봇 심판이 등장해도 인간 심판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한 심판은 “루심이라면 페어와 파울 여부, 세이프와 아웃을 판정하는 역할이 있다. 구심도 파울 여부, 스윙 판정 등에 더 집중하면 된다. 무엇보다 야구 규칙을 적용하고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역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 심판만이 할 수 있는 경기의 ‘진행자’이자 조정자 역할이 있다는 겁니다. 이는 야구 역사 초창기  “모자와 연미복을 갖추고 3루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 “경기를 하는 선수들 간의 ‘토론’을 중재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던 심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에서 나온 몇몇 장면을 보면서, 과연 심판들이 ‘인간 심판’만 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달 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T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입니다. 당시 4회초 2사 1, 3루에서 KT 김상수의 타구가 2루심 이영재 심판위원에게 맞고 굴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심판진은 야구규칙 5.06(c) 6항(내야수(투수 포함)에게 닿지 않은 페어 볼이 페어지역에서 주자 또는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또는 내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지 않은 페어 볼이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는 진루한다)을 잘못 적용해 3루 주자 조용호의 득점을 인정했습니다. 일반 야구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즉각 ‘규칙을 잘못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심판진의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결국 KBO는 경기규칙을 잘못 적용한 이영재 심판위원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KBO는 바로 다음날 “경기규칙을 잘못 적용해 득점을 인정한 심판위원에게 무기한 퓨처스리그 강등, 벌금, 경고 등 징계 조치한다. 2루심을 맡은 이영재 심판위원(팀장)에게 무기한 퓨처스리그 강등과 벌금 100만 원 징계 조치를, (심판 조원들에게는) 각각 100만 원의 벌금 및 경고 조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달 뒤인 어제는 잠실 한화 이글스-LG 트윈스 전에서 논란의 장면이 나왔습니다. 1대 1 동점인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LG 정주현이 번트를 대려다 강공으로 전환하면서, 어떻게든 공을 맞히려고 배트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 배트에 포구하려던 한화 포수 최재훈이 맞고 쓰러졌습니다. 현장 심판진은 4심 합의를 거쳐 최재훈의 타격 방해를 선언했고, 정주현이 자동으로 출루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심판위원회에서 추가 확인한 결과, 타격 방해가 아닌 수비 방해로 판정 돼야 했을 상황이었습니다. 야구 규칙 6.03(a)(4)의 “타자가 제3스트라이크 투구 또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배트를 페어 또는 파울지역으로 던져 포수(미트 포함)를 맞췄을 경우”에 해당한다는 게 심판위원장의 설명입니다. 만약 LG가 이어진 득점 찬스에서 점수를 내서 끝내기 승리를 거뒀더라면, 얼마나 큰 후폭풍이 닥쳤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KBO는 심판진 내부 제재 등의 절차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규칙의 잘못된 적용, 재정 실수보다 심판들의 ‘태도’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일반 야구팬도 아는 규칙을 잘못 적용해 퓨처스 강등 징계를 받았던 이영재 심판은 1군에 복귀하자마자 롯데 전준우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중계화면 상으로는 완벽한 ‘볼’인 공에 이영재 구심이 스트라이크 삼진을 선언하자, 전준우가 아쉬워하면서 “스트라이크가 맞느냐”고 물어봤는데 이게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어제 잠실 경기에서도 권영철 심판과 LG 박해민이 고함을 지르며 언쟁하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권 심판은 LG 더그아웃까지 따라와 “야! 나도 고생이라고 지금!”하며 소리를 질렀고, 이에 박해민도 “누가 고생 안 한다 했어요? 왜 소리를 지르세요. 내가 쳐다봤어요?”라고 받아친 겁니다. 지금 KBO 심판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원활한 경기 진행과 조정자 역할은 제대로 못 하면서, 짜증 내고 고함치며 권위를 내세우는 ‘인간적인’ 단점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 심판을 옹호하는 마지막 근거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기 바랍니다. 인간 심판이 필요한 이유를 심판진 스스로 입증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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