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고 임형원 "세상이 놀랄 체인지업, 보여드릴게요"[Future's Player]

인천고 임형원 "세상이 놀랄 체인지업, 보여드릴게요"[Future's Player]

전수은
전수은
-'제2의 김병현, 임창용'을 꿈꾸는 인천고 투수 임형원
-"프로란 꽃을 피우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임형원의 비밀 무기 '체인지업'
인천고등학교 투수 임형원(사진=베이스볼코리아)

‘깡’ 마른 체구에 앳된 표정. 또래 친구들보다 유난히 미소가 많았던 학생선수 임형원. 구속은 제법 빨랐지만, 세상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꽃을 피워 보이겠노라’ 다짐하며 묵묵하게 제 길을 걸었다.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또 버틴 임형원.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이제 한국야구계는 임.형.원 이름 석 자를 또렷이 기억한다.

인천고 3학년 임형원은 광속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다. 신장 184cm, 체중 72kg의 날렵한 체구를 지녔다. 140km/h 후반대의 빠른 패스트볼은 임형원의 주 무기다. 덕분에 ‘광속 사이드암’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KBO리그 10개 구단 스카우트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를 주목했다. 올여름 신분 조회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제2의 임창용’을 꿈꾸는 임형원. 그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어요. 비결이 있습니까(*본 인터뷰는 드래프트 직전에 진행됐습니다).

일단 제가 사이드암 투수이기도 하고, 빠른 공을 던지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올핸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의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각이 큰 슬라이더는 원래 주무기였습니다. 언제 던져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이에요. 슬라이더 외엔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을 던집니다. 슬라이더는 야구 시작할 때 배웠고, 체인지업은 중학생 때 배웠는데 제구가 잘 안 돼서 고민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던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체인지업 연마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웃음). 투심은 고2 시즌 마치고 타이완 전지훈련 기간 때 본격적으로 연습했어요.

사이드암 투수에게 체인지업은 ‘곱게 핀 장미의 가시’와 같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최대한 많이 보고, 저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최근엔 좌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코스 공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치 임창용 대선배처럼요.

롤모델이 임창용 선순가요?

임창용 선배와 관련된 영상은 거의 다 찾아봤어요. 아 참. 엄상백 선배 덕수고 시절 영상도 자주 봤고요. 단순히 폼을 연구하기보단 어떤 구종을 어떤 카운트에 던지는지. 어떤 볼배합으로 타자를 상대하는지를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요즘 아마야구 팬들 사이에선 ‘광속 사이드암’으로 통합니다.

(수줍게 웃으며) 저야 영광이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하면 ‘임형원’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최고 구속은 어느 정도인가요.

올해 청룡기 대회 때 149km/h를 기록했습니다. 평균 143, 4km/h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제 목표는 150km/h입니다. 선배들 보면 보통 프로에 가서 구속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 꾸준히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되고 싶어요. 그래서 몸 관리나 하체 근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신분 조회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임형원 선수에 대한 관심이 한반도를 넘어섰어요.

네(웃음). 저도 나중에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관심을 주시니 저로서는 정말 영광이죠.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정말 프로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그리 유능한 선수가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까진 아주 평범했어요.

중학교 시절의 임형원은 어떤 선수였습니까.

동산중 시절 사이드암 투수치곤 구속이 빨랐지만, 투수로선 그저 그런 선수였어요.

평범했다?

그러다 인천고 계기범 감독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보잘것없는 제게 인천고 입학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참을 재활 운동에 매달렸어요. 감독님껜 정말 죄송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재활이요? 큰 부상이었나요.

부상은 아니었고 팔꿈치 쪽이 조금 좋지 않아서 재활군으로 내려갔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공을 던지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다행히 재활 훈련을 하면서 몸을 다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른 편이지만, 그때는 더 말랐어요. 67kg 정도? 체중도 늘려야 했어요.

보통 재활 기간을 ‘인고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야구를 못 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저는 재활만 하고 있으니...스트레스가 심했죠. 한편으로는 제게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된 것 같아요.

터닝 포인트라. 반전의 시간이었군요.

재활 후, 팀에 복귀했는데 모든 게 제 맘 같지 않았어요. 제구부터.. 휴. 1학년 때 재활하면서 몸을 만들고 스피드는 올랐는데 제구가 안 되니까 답답했습니다. 근데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될 때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날부터 기본적인 섀도 피칭부터 감독님, 코치님한테 매달렸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제 폼을 찾게 됐고요. 제구가 잡히니 자신감도 생겼고.

야구란 스포츠 정말 쉽지 않습니다.

폼 바꾼 건 아니고 교정한 정도? 코치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감독님도 늘 세세하게 챙겨주셨고. 상체가 너무 빠르다. 조금 집어넣고 던져라.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그 부분에 중점을 두니 신기하게 모든 부분에서 좋아졌습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연습밖에 없었어요. 다각도로 공을 던지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그러다 ‘아,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렇게 저만의 폼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쇼케이스가 바로 2018시즌 봉황대기였습니다.

(밝게 웃으며) 네. 2학년 때 나갔던 봉황기 이후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임형원은 2018년 9월 1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덕수고와의 2018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선발로 나서 3이닝 2피안타 2사사구 2탈삼진 2실점(1자책)을 기록하며 실력을 뽐냈다).

특히 8강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어요.

중요한 경기라 선배들이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절 선발투수로 올리셨어요. 솔직히 갑작스런 상황이라 많이 떨렸거든요. 속으로 ‘그냥 즐기자’고 생각했어요. 경기는 져서 많이 아쉬웠지만, 그날 이후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나요?

좋은 얘기를 듣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죠. 다치면 안 되니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보강 운동도 꼭 챙겼습니다. 부모님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다치지 않게 졸업하자’고 하셨고요. 그리고 감독님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

그게 뭔가요.

‘네 공은 쉽게 못 치는 공이다. 칠 테면 쳐보라는 마음으로 던져봐’라고 주문하셨죠. 그런 마음으로 마운드에 서니 즐기는 야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날 이후로 야구가 정말 재미있습니다(웃음).

사이드암 투수의 매력은 뭡니까.

어릴 때부터 볼 끝이 지저분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가진 장점은 사이드암의 특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겠다 싶었죠. 매력은 정말 많지만, 변화구의 큰 각이나 밑에서 깔려 들어오는 포인트 덕분에 상대 타자들이 까다로워한다?

김병현, 임창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사이드암도 있지만, 오버핸드보단 롱런하기 힘들단 분석도 있습니다.

어릴 때, 김병현 선배 영상도 많이 봤는데 따라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유연함도 필요하고, 타고난 부분 역시 필요하더라고요. 일단 사이드암은 우투수의 경우 좌타자 상대가 힘들고, 부상 또한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제가 몸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선배님들처럼 되기 위해선 체중 증가와 하체 위주의 웨이트 트레이닝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부분인데 ‘자기관리’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쉴 때도 몸이 다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안 합니다. 저에게 첫 번째는 항상 야구니까요. 야구에 지장이 된다면 쳐다보지도 않는 편입니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겠군요(웃음).

스트레스 풀 때는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영화 한 편. 그게 제 유일한 낙이에요.

요즘 가장 큰 야구 고민이 있다면.

좌타자 상대할 때 스킬? 변화구 제구를 더 세심하게 가다듬고 싶어요. 요즘도 좌타자 상대할 때 던질 체인지업이랑 싱커 연습 중이고 패스트볼 컨트롤에 더 신경 써서 피칭하고 있어요.

힘든 시간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마운드에 서는 이유가 있나요.

흔히들 ‘프로에 가면 꽃이 핀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고생해도 나중에 프로에 가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길이 열린다고 들었어요. 마치 잘 핀 한 송이의 꽃처럼요. 전 그 꽃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닐까 싶어요.

프로 선수가 된다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성실한 선수요. 신인은 아무래도 기회를 얻기 어렵잖아요. 또 성실해야 발전할 수 있고 기회를 또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임창용 선배처럼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그리고 꾸준히 오래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 선수답지 않게 당찬 포부네요.

또 하나 있습니다(웃음). 중, 고등학생들이 ‘임형원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겁니다. 제가 박치국 선배나 정우영 선배를 보며 동경하는 것처럼요.

고3. 19살. 투수 임형원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전국대회 우승? 프로 입단? 다 이뤄내고 싶어요. 10대의 마지막 순간이잖아요. 뭔가 설레면서도 떨려요. 우선 남은 대회가 있으니까 시즌 잘 마치고 야구부 친구, 후배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을 안고 (2020 KBO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기다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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