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대화] 고교 우승 청부사 "지도자의 삶은 고달파야 한다."

[감독과의 대화] 고교 우승 청부사 "지도자의 삶은 고달파야 한다."

전수은
전수은
덕수고등학교 정윤진 감독 인터뷰
"선수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바르게 이끌고 나가는 것"

직설(直說). ‘바른대로’ 혹은 ‘있는 그대로’ 말을 함. 또는 그 말을 뜻한다.

덕수고등학교 정윤진 감독 입에서 나온 말이 그렇다. 아마야구 현안에 관해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 뱉는 정 감독의 직설을 듣고 있자면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덕수고는 전통의 강호다. 해마다 우승 후보로 꼽힌다. 올핸 투-타 전력에서 빠지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 다. 좌완 투수 정구범(3학년)과 우완 투수 장재영(2학년) 등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물론 그 이면엔 정윤진이란 명장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재료가 훌륭하다고 맛있는 요리가 나오진 않는다. 뛰어난 원석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그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문득 그 비법이 궁금해 정 감독을 찾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그의 행동 또한 ‘직설’이었다. 선수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바른대로 이끌고 나가는 것. 또 지도자답게 살아가는 것. 명장이란 타이틀 뒤에 숨겨진 정 감독의 애환이 느껴지는 레시피다.

올해도 많은 이가 덕수고를 최강으로 평가한다. 이젠 그런 평가가 식상하진 않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지금까지 11번 우승했는데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세상 일이 마음 먹은대로 되면 무슨 걱정이겠나. 정말 매번 힘들었다. 그게 고교 야구더라.

현역 감독 가운데 우승 횟수가 가장 많은 듯하다.

2000년대 들어선 아마 그럴 거다(웃음). 멀리 보면 최재호 감독님 정도 아닐까?

지난 해엔 아쉽게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속이 쓰린 질문이다. 지난 시즌엔 여러모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비시즌 내내 우승 하나만 바라보고 준비를 많이 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웃음).

일단 투수진이 확실하다. 에이스 정구범과 최근 ‘명문고 열전’에서 우수투수상을 수상한 좌완 투수 이지원이 핵심 투수다. 지원이는 대구고 에이스 이승민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또 사이드암 투수 김동혁도 기대가 크다. 뭐 장재영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웃음). 이젠 마운드 운영에서 노련함마저 생겼다.

정구범은 베이스볼코리아가 선정한 TOP PROSPECT 랭킹(3월)에서 전체 2위에 올랐다. 현 고교 투수들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높단 평가를 받는다.

비시즌 웨이트 트레이닝 비중을 높였더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본인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지난 해와 올 해 사진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다르다. 체중도 10kg 이상 늘었다. 지난해 최고 구속이 147~148km/h였는데 올 핸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일한 단점이 마른 체형이었는데 그걸 보완했다.

‘차기 에이스’ 장재영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올해 명문고 열전 때 국외 스카우트들이 정말 많이 왔다. 아시다시피 (장)재영이는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쓸 투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한 게 없다. MLB 스카우트들에게 물어보니 인터내셔널 랭킹에서 재영이가 최상위권 이라고 하더라. 장래성이나 인성에서도 완벽하다. 올핸 타석에도 자주 들어갈 계획이다.

신체적으론 이미 성인 레벨에 이른 듯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43km/h였던 구속이 두 달 만에 7km/h가 늘었다. 그때부턴 재영이를 아무도 못 만지게 했다. 선동열 선배나 박찬호가 와도 막았을거다. 투수 코치에게 늘 이야기한다. 혼동이 올 수 있으니 아무것도 터치하지 말라고(웃음). 그때부터 나 혼자 재영이랑 단순한 훈련부터 시작했는데 정확히 7일에 1~2km/h씩 구속이 오르더라.

지도자 ‘정윤진’만의 관리법이 있는 건가.

일단 그 선수의 원초적인 투구폼을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가령 이 친구의 팔 각도가 높다면 높은데로, 낮다면 낮은대로 가져가는 게 첫 번째다. 그 다음이 아주 미세한 단점들을 보완하는 작업이고. 예전부터 공 회전수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 공 회전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나. 난 예전부터 이 부분을 눈여겨봤다. 제자들 중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한 선수들이 많은데 대부분 공 회전수가 좋은 선수들이었다. 손끝 감각을 끌어올리는데도 중점을 둔다. 그 다음이 하체 힘을 이용하는 것. 재영이도 처음엔 하체 밸런스 잡는 훈련만 했다. 야구 이야기는 밤새 이야길 계속해도 모자라다(웃음).

그런 지도 철학 덕분인지 덕수고엔 매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

사실 내 역할은 크지 않다. 단지 선수들과 진심으로 어울리다보니 서로 발전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곤 한다. 그 에너지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예전 제자 가운데 엄상백(kt)과 임병욱(키움)을 한 번 보라. 두 선수가 처음부터 좋은 선수였나? 아니다. 고교 시절을 거치며 좋은 선수로 거듭 났다. 당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내 삶의 나침반이다. 단순하게 좋은 선수가 많이 와서 우승한단 건 야구를 너무 쉽게 보는 소리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바가 있다면.

‘야구로 선수들을 흔들지 말자’. 내 신조다. 야구 외적으로 학생 본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감독이 아닌 선생님으로 다가간다. 고맙게도 덕수고 선수들 모두 그런 내 신념에 잘 따라와줬고.

그렇다면 이기는 방법을 안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론 최고의 동문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웃음). 목동 야구장을 가득 채운 그들의 함성은 ‘10번째 타자’라 불러도 될 정도다. 우리 동창회는 매년 야구부 학생 선수들 전원을 무상 지원한다. 지도자들 월급부터 시작해 캠프 물품, 유니폼, 장비 등 모두 동문회 주머니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다. 학부모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본인 부담이 줄어드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는 어떤 스타일인가.

기량을 떠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다. 혼이 나도 기죽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기 야구를 이어가는 게 마음에 든다. 가장 싫은 게 삼진을 당하고 고개를 숙이는 선수다. 그런 선수는 또 실책하고, 또 삼진당한다. 하지만, 삼진을 당해도 ‘그래도 괜찮아’하며 반전을 다짐하는 선수는 반드시 성공하더라.

흔히 덕수 야구는 ‘스몰볼’이라고 부른다. 짜임새와 조직력이 돋보이는 경기력 덕분이다.

그 말엔 동의 할 수 없다. 아마야구에 스몰볼과 빅볼이 어디있나. 고교야구만해도 모든 대회가 토너먼트다.오늘 이겨야 내일이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한 많은 선수가 타석 혹은 마운드에 서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건 선수 몫이고, 경기에서 이기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야만 보다 더 많은 선수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프로에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나 또한 강공으로 공격하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고교야구 감독은 그래선 안된다.

감독의 야구 철학과도 이어지는 부분인가.

핵심은 아웃 카운트를 아끼는 야구다. 예를 들어서 노아웃 주자 1루 상황이라고치자. 보통 한 베이스를 더가게 하려면 희생번트를 지시하지 않나. 그런데 번트가 아닌 도루를 한다거나 강공으로 더 많은 주자가 진루하면 아웃 카운트를 번 셈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이자 모두가 아는 야구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점을 간과한다. 우리 팀 경기 때 선수들 눈을 한 번 보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걸 볼수 있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 수비 할 땐 점수를 최소한으로 막아야 하고. 잘하는 팀은 그런 실점을 최소화 할 줄 안다.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니까. 많은 팀이 우릴 까다로워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고교 팀이 덕수고급 평가를 받진 않는다.

야구도 축구와 비슷하다. 점유율이 생명이다. 야구도 1회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흐름을 가져오느냐에 승패가 갈린다. 그 흐름을 유지하는 게 포인트다. 그러기 위해선 본 헤드플레이같은 실수가 없어야 하고. 주루사도 조심해야 하고. 적절한 투수 교체도 필요하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 경기 흐름을 유지 할 수 있다.

덕수고는 데이터 야구로도 유명하지 않나.

(미안한 듯 웃으며) 우리 코치들 고생이 정말 많다. 하지만, 공식경기에 나서려면 면밀한 분석이 필수다. 이젠 아마야구도 데이터 분석이 중요한 시대다. 물론 데이터의 성질은 프로야구와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우선 자료가 많지 않고, 객관성이 떨어진다. 경기 순간마다 분석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당연한 정상은 없다. 정상을 지키려면 남보다 몇 배는 더 뛰어야 한다.

덕수고 야구부는 한국 야구 역사의 산실이다. 하지만, 그런 야구부 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들었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선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은 건 확실하다. 이미 교육부가 정한 계획안대로 학교 이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로선 학생 선수들이 마음 놓고 야구 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게 크다. 필요한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고 호소해봤지만, ‘검토해보겠다’ 는 답변만 돌아왔다. 공립학교의 특성상 교육청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론 선대에 쌓은 업적들이 흔들릴까 걱정이다. 다행히 최근엔 동문회의 도움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느 학교를 가나 시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더라.

이게 참 답답한 게. 야간 경기를 해야 하는 데 조명탑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야구협회에서 시설을 만들어 줘야하지않나. 프로 구장에 조명탑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프로도 프로지만, 아마 야구 인프라부터 먼저 확충해야 할 것 아닌가. 대체 어느 나라가 아마야구보다 프로야구가 상위 기관 역할을 하나. 학생선수들 없이 어떻게 프로야구가 운영되나. 학교 야구부를 창단하면 몇 억씩 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학부모 부담을 최소화하고 마음껏 야구 시킬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는 데 돈을 써야지.

시설뿐만이 아니다. 중학교 야구부엔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가는 실정이다.

장기적으론 ‘클럽 시스템’을 정착돼야 한다. 리틀야구연맹을 보라. 한영관 회장이 피땀 흘려 놓은 것들이 이젠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았다. 운동만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모두가 야구를 접해보고 기량이 좋은 선수들은 엘리트 팀으로, 나머지 선수들은 또 각자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게 아마야구의 새로운 대안이자 한국 야구 가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교육부에서도 실질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구하는 바다.

틀린 말이 아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현장의 목소릴 듣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아마추어 현장은 프로완 다르다. 정말 너무 열악하다. 당장 코치들 인건비만 봐도 넉넉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 편히 일 할 여건을 갖춰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맞다. 하지만,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에겐 그만한 대우가 필요하다.

속시원한 대답이다. 많은 걸 이뤘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듯하다(웃음).

다른 건 없다. 내가 히딩크 감독도 아니고(웃음). 머 한 가지 꼽으라면 한국 야구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 속도에 따라 야구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그에 걸맞은 지원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나 KBO에서 해줬으면 한다. 여기에서 ‘지원’은 누구나 야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을 말한다.

고교 야구 베테랑다운 바람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한국 야구가 살고, 내 가 그 기둥이 돼 버티는 것 말고 뭐가 더 있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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