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대화] “그라운드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강릉영동대 김철기 감독

[감독과의 대화] “그라운드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강릉영동대 김철기 감독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강릉영동대는 대학야구의 신흥 최강자로 통한다. 2006년 창단해 단기간에 대학 2부리그를 평정했고, 2017년 1·2부리그 통합 후에도 4년제 명문팀들을 무너뜨리면서 강팀의 자리를 굳혔다. 매년 신인드래프트에서도 꾸준히 프로 선수를 배출하며 침체한 대학야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야구 불모지 강원도에서 2년제 대학이란 불리함을 극복하고 무명 팀의 반란을 이룬 강릉영동대의 역사를 김철기 감독과 함께 돌아봤다.

“아내와 어머니 암 수술…감독 인생 가장 힘들었던 2022년”

강릉영동대를 강팀으로 끌어올린 김철기 감독(사진=베이스볼코리아)

대학야구도 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준비는 잘하고 계십니까.

그제부터 이틀간 창원에 내려가서 NC 다이노스와 연습 경기를 했습니다. LG 트윈스하고도 했고, SSG 랜더스와도 경기가 예정돼 있어요. 이맘때면 쉴 새 없이 바쁩니다. 올해는 특히 더 그래요.

뭐가 제일 고민인가요.

2년제다 보니 매년 선수 명단을 새로 짜야 하거든요. 3, 4학년이 있으면 4학년이 졸업해도 2, 3학년이 올라와서 그 자리를 대신할 텐데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조건이에요. 해마다 끊임없이 선수를 만들어야 합니다.

매년 대학리그 우승을 휩쓸다 지난해 무관에 그친 것도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서너 명씩 나왔던 프로 지명 선수도 작년엔 1명에 그쳤습니다.

솔직히 얘기할게요. 제가 2005년에 이 학교에 감독으로 와서 올해로 19년째인데, 그중에 작년이 최악이었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제가 문제였죠. 작년엔 도통 야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집안에 우환이 많았어요. 아내가 암에 걸려 수술했고, 대구에 계시는 어머님도 폐암 수술을 하셨거든요. 가족 중에 암 환자가 둘이나 나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뭘 했는지도 모르게 1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아이고, 마음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이전까지 전문대 상대로는 져본 적이 없었는데, 작년에는 두 번이나 졌어요. 한국골프대 상대로는 실책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4대 5로 졌고요, 여주대 상대로도 0대 1로 졌습니다. 110km/h 던지는 투수 상대로 한 점도 못 냈죠. 집중이 안 되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전에는 상대 벤치를 유심히 보면 무슨 작전을 하는지 다 보였는데, 작년엔 전혀 보이질 않았어요. 상대 작전도 안 보이고, 우리 작전도 안 되고. 정말 작년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경기장에 맑은 정신으로 나가야지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가 복잡하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가족들 건강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요즘 워낙 의학이 발달해서 옛날처럼 암이 사망선고는 아니니까요. 다른 부위로 전이만 안 되면 큰 문제가 없고, 약도 잘 나오고 하니까.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아요.

“박동희 선배 ‘레이저’ 공이 준 충격…그 길로 선수 생활 접었다”

훈련 중인 영동대 선수들(사진=베이스볼코리아)

지도자로서 명성에 비해 선수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는 것 같아요. 투수 출신이란 것, 양준혁 해설위원과 김태한 투수코치(KT 위즈)의 대구상원고 1년 후배라는 것, 잠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 정도? 죄송하게도 이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양준혁, 김태한과는 학년은 같은데 1년 유급해서 졸업이 늦었죠. 사실 전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야구가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았고, 내가 왜 야구를 했을까 후회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아니더라고요.

지나친 자학 아닌가요.

이유가 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박동희 선배가 계기였어요.

박동희 선수요.

어느 날 부산 사직야구장 옆의 피칭 훈련장에서 한창 투구를 하고 있었어요. 당시 저는 힘껏 던져봐야 스피드가 135km/h 정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서 동희형이 공을 던지는데, 이건 뭐…(웃음) 동희형 공이 레이저라면 제 공은 105mm 곡사포 수준이었죠. 근데 동희형이 저한테 오더니 한마디 하더라고요.

뭐라고 하던가요.

‘야, 철기야. 내가 오늘은 공이 별로라서 그만 던져야겠다’ 그러지 뭐에요. (웃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죠.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거기서 끝이었어요. 다들 대구 원정 가려고 버스에 타는데, 저는 거기 타지 않았습니다. 구단에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그 길로 나왔어요.

박동희 선수가 잘못하셨네요. (웃음) 그럼 지도자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우연한 계기였어요. 1994년에 김용희 감독님이 롯데 사령탑이 되면서 원광대에 있던 김봉근 선배님을 투수코치로 영입했어요. 투수코치가 공석이 된 거죠. 그때 롯데 스카우트 팀장이 정학수 선배였는데 저랑 친했거든요. 선배님이 ‘다른 일 없으면 원광대 가서 애들 좀 봐주라’고 하셔서, 그때 처음 지도를 하게 됐죠.

그렇군요.

가서 일주일 정도 선수들을 가르쳤어요. 그동안 절 쭉 보신 정병규 원광대 감독님이 ’너는 선수 하는 것보다 지도자가 나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당시 프로에서 받은 연봉이 800만 원이었는데, 코치 연봉은 1200만 원이니까 훨씬 나을 거라고요. 처음엔 망설였죠. ‘제가 야구도 잘 모르고 지도 경험도 없는데 누굴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지도자로서 자질을 발견한 것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웃음) 그때 저는 야구를 잘 모르니까 그냥 많이 뛰게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 많이 시킨 게 전부였어요. 보통 투수들 훈련이 야수보다 일찍 끝나잖아요. 그런데 러닝 실컷 하고 피칭 하고 나면 운동장에서 할 게 없는 거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감독님 눈치가 보이니까, 다 웨이트 트레이닝 룸으로 데려간 거죠. 감독님 눈에서 벗어나려고.

당시만 해도 국내야구에선 여전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선수들이 힘들어했는데, 하다 보니까 점점 몸에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본인들이 느끼기에도 효과가 괜찮으니까 그때부터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전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애들이 하도 열심히 해갖고. (웃음) 그래서 감독님이 절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람마다 몸에 잘 맞는 옷이 있으니까요. 감독님은 지도자가 체질이었던 것 아닐까요.

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야구에 대해 많은 걸 배웠어요.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 지도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선수 시절 제 경험이 반면교사였죠. 선수들이 좀 더 절실하게, 목표의식을 갖고 야구하도록 도우려고 했습니다. 왜냐, 제가 그렇게 못 했으니까요.

“강릉영동대가 연고대 상대로 대등하게 겨뤄서 이길 수 있는 게 야구”

강릉영동대의 경기 장면(사진=베이스볼코리아)

강릉영동대엔 어쩌다 오시게 됐습니까.

원광대, 홍익대를 거쳐 2005년 10월 영동대 야구부 창단과 함께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강원도가 야구 불모지다 보니 선수 모집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선수 11명 데리고 시작했어요. 지금 프로에 있는 김지용(두산)이나 이상호(KT)가 그때 멤버였어요. 지금이야 학교에서 지원을 잘해주지만, 처음 시작할 땐 열악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대회 참가비, 용품비, 식비까지 죄다 학부모들 주머니에 의존했고 한번은 숙소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서 선수들더러 내라고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야구부를 대하는 학교 측의 태도가 달라진 건 언제부터인가요.

첫해에 우리 야구부가 7승을 거뒀습니다. 선수 11명으로 대통령배 8강까지 올랐고요. 어느날은 서울대를 이기고 학교로 돌아왔더니, 전 교직원이 교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겁니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단체로 손뼉을 막 치지 뭐에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서울대한테 이겨서 학교 윗분들이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하더군요. (웃음)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야구에 대해 잘 몰랐던 거죠.

어디 서울대뿐인가요. 연고대는 물론 대학야구에서 손꼽히는 강팀들 상대로 다 이기지 않았습니까.

저도 가끔 학교에 그렇게 얘기해요. 우리 학교가 연고대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게 야구 아니냐고요. 학생 숫자나 학교 면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야구는 이긴다, 연고대나 서울에 있는 대학들보다 우리 학교 성적이 더 좋다. 강릉영동대라는 이름을 걸고 서울대, 연고대 상대로 대등하게 겨뤄서 이기는 게 야구부다. 그럼 학교에서 야구부에게 더 잘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설득합니다.

효과가 있습니까.

사실 우리 학교가 야구부 지원을 꽤 잘해주는 편에 속합니다. 이제는 용품비, 선수등록비도 다 학교에서 지원하고 연습경기에 드는 비용도 전부 내주세요. 학교 교직원도 이제는 야구 전문가가 됐어요. 처음 야구부 생길 때 일반 직원이셨던 분들이 지금은 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셨거든요. (웃음) 감독으로 19년 있는 동안에 많은 게 달라졌죠.

강릉영동대가 4년제 대학, 야구 명문 대학들을 이기는 비결이 뭘까요.

일단은 선수들의 생각부터 바꾸게 합니다.

생각이라.

사실 선수 중에 우리 학교에만 원서를 넣어서 입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은 수도권 4년제 대학이 최우선이고, 거기서 탈락한 선수들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4년제 학교와 붙기 전에 항상 선수들에게 얘기합니다. 아마 너희들 처음 우리 학교에 올 때는 4년제 합격한 친구들이 부러웠을 거다. 이제는 쟤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거꾸로 쟤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게 만들자고요. 너희가 여기서 2년 동안 열심히 운동해서 프로에 갈 때 저 친구들은 대학교 3학년, 4학년까지 다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저 친구들이 오히려 너희를 부러워하지 않겠니.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경기에 임하자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최근 신인드래프트 결과를 보면 강릉영동대가 웬만한 서울, 수도권 4년제 대학보다 많은 지명자를 배출했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면 연습량도 우리가 4년제 학교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 수업의 대부분을 월요일에 듣는 게 가능하거든요. 그러면 일주일 가운데 나머지 6일을 훈련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4년제 학교와 달리 우리는 1년 6개월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그게 우리의 장점이죠. 다행히 선수들도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성인인 대학생들을 다루는 데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오히려 대학생이 고교생들보다 더 다루기 쉽습니다.

그런가요.

무작정 뭔가를 금지하거나 지시하기 전에, 먼저 이해부터 시키면 돼요. 다들 성인이고 판단력이 있잖아요. 가령 어떤 선수의 친구나 여자친구가 강릉까지 왔다. 그럼 전 가서 밤새워 놀라고 해요. 대신 다음 날 운동장에 나오면 절대 티를 내선 안된다고 당부하죠. 누가 나갔다가 왔는지 다들 알잖아요. 그런 선수가 다녀와서 더 열심히 하고 파이팅 외치고 잘하면 아무 문제 될 게 없죠.

그런 게 진짜 자율이죠.

맞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그런 점에서 참 잘 해주고 있어요. 그래야 다음에 또 나가거든요. (웃음) 그리고 새로 후배가 들어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려줍니다. 그 후배는 또 다음 후배에게 전해주고요. 덕분에 제가 19년 감독으로 있는 동안 선수가 도망가거나 단체로 이탈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절실함으로 무장한 우리 선수들, 프로팀과 상대해도 쉽게 안 진다”

대구상원고 선후배인 이만수와 김철기 감독 (사진=이만수 감독 SNS)

제가 좀 전에 훈련장을 지나오다가 ‘역전의 용사’들과 마주쳤습니다.

우리 팀에 백전노장 선배님들이 여러 분 계시죠. (웃음)

‘자갈치’ 김민호 전 NC 타격코치, 박동수 전 NC 스카우트 팀장, 그리고 서창기 전 순천효천고 감독을 여기서 다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에는 아마야구는 물론 프로에서도 젊은 코치를 선호하는 추세인데, 베테랑 지도자들을 고용해서 얻는 장점이 있습니까.

물론 젊은 코치들의 패기도 좋죠. 우리 팀 김종호 코치(전 NC), 이태오 코치(전 롯데)도 엄청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대선배님들이 갖고 계신 연륜과 경험에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어요. 다들 프로야구 지도자 경험도 많고, 아마야구 감독으로 많은 선수를 길러 낸 분들이라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선수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는 팀이니까요. 선배님들이 여기까지 와서 도와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죠.

야구 원로 사이에서 강릉영동대 칭찬이 자자합니다. 한 원로 분은 요즘 베테랑 지도자들이 역량과 노하우를 나눠줄 곳이 마땅치 않은데, 영동대에서 그럴 기회를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배님들이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웃음)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선배들과 함께 일하는 게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안 그래도 많이들 물어보세요. 그런데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정말 쉬워요. 선배 대접하면 됩니다. (웃음) 우리 야구 선배들이니까 선배님으로 대접해 드리면 돼요. 부를 때도 코치라고 안하고 선배님이라고 부릅니다. 선수 지도도 될 수 있으면 선배님들 의견에 따르는 편입니다. 팀에 필요한 부분이나 부족한 점이 있을 때는 ‘이러이러한 점을 좀 더 신경 써달라’고 요청하면 되고요. 그러면 선배님들도 공감하고 호응해 주시거든요. 부담스러울 게 하나도 없어요.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감독이라고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어요. 우리가 선배들의 노하우를 가져다 쓰는 건데 감사한 일이잖아요. 선배님이 오시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할 이유가 없죠. 선배님들도 마찬가지로 조금은 내려놓으셔야 하는 부분이 있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존중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배님들이 정말 열심히 지도하시거든요. 후배가 감독이라고 더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시고, 선수들 앞에서 예우해 주시고요. 감사할 뿐입니다.

프로야구단과 연습경기를 자주 갖는 것도 강릉영동대의 특징입니다.

선수들에게는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죠. 우리 선수 중에 나중에 프로에 가는 선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선수들은 언제 프로 야구장에서 프로 선수들 상대로 경기를 해보겠어요. 프로팀에서 연습경기 요청이 들어오면 전 웬만하면 다 오케이합니다. 저녁에 연락이 와서 다음날 경기하자고 해도 그러자고 해요.

프로에서 좋아할 만하네요.

한번은 LG 케이시 켈리가 부상으로 2군에 있었을 거에요. 1군에 올라가려면 2군 연습경기에 등판해서 투구 수를 끌어올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필요한 날짜에 퓨처스 경기가 없다보니, 우리 팀으로 연락이 왔어요. ‘켈리가 내일 공을 던져야 하는데 상대할 팀이 없다. 안 되는 거 알지만, 혹시 어떻게 안되겠냐’고요. 그런데 우리는 다음날이 휴식일이었거든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선수들한테 부탁했죠. 우리가 야구하면서 켈리 공을 쳐볼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 이거 진짜 좋은 기회다. 다 같이 이천 가서 경기만 하고 거기서 바로 해산하자. 가고 싶은 사람만 가면 된다. 선수들도 얘기 들어보니까 솔깃한 거지. 그래서 선수들, 코치님들 다 같이 가서 경기했어요.

지금 생각났는데 그 경기 결과를 LG 홍보팀에서 브리핑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켈리가 오늘 강릉영동대 상대 연습경기에 등판해 몇 이닝 몇 구 던졌고 최고 몇 킬로미터까지 나왔고…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비슷한 브리핑을 하도 자주 듣다 보니 ‘프로랑 상대할 팀이 영동대밖에 없나?’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프로 2군 팀과 붙어도 쉽게 안 지거든요. 프로에서도 대학팀 중에 연습 상대로는 우리가 가장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수들이 절실함을 갖고 열심히 하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선수들에게 강조해요. 여기 있는 동안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후회가 남지 않게 하자고. 그리고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미련 없이 새로운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새로운 길이요?

흔히 노력은 배신 안 한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안 그렇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서 1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하고, 그만둘 때는 미련이 남지 않게 하자는 거죠.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하면 됐을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자기합리화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야구 외에 다른 길은 생각조차 안 해봤기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닐까요.

그래요. 저도 선수들에게 ‘교통사고 날까 겁나면 면허는 어떻게 따느냐’고 얘기해요. 경험을 안 해봤으니까 두려운 거죠. 하지만 야구선수도 세상의 수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잖아요. 여기에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제자 중에는 4년제로 편입해서 학교 선생님 하는 친구도 있고, 한국체육대학교나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가끔 그 친구들한테 야구부 와서 강의해 달라고 합니다. 야구 말고 새로운 길에 도전해서 성공한 경험을 들으면 용기가 생길 거라 생각하거든요.

야구부가 있는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야구부 편입도 많이 가죠. 매년 한 20명씩 갑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선수가 들어오면 일단 1년을 보고 열심히 하자고 해요. 그리고 거기서 6개월 더 바짝 열심히 해서 승부를 걸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1학기를 해봤는데 야구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는 차라리 빨리 군대를 가는 편이 낫습니다. 일단 군대부터 다녀온 뒤에 친구도 사귀고, 강의실도 들어가고 시야를 넓히는 거죠. 2년 해서 안 되는 걸 구태여 4년 씩이나 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들려주시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우리 야구부 선수래요. 제 조언대로 준비해서 4년제 학교에 편입했다고 감사 전화를 했더라고요. 솔직히 전 그 친구가 잘 기억이 안 났지만, 그래도 축하한다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저 야구에 미련이 남아서 그러는데, 혹시 새 학교에 가서 야구할 수 있습니까?’ 이러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영동대에서 경기도 제대로 못 뛰었고 야구에 미련이 남아서 한 번만 더 해보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좀 심하게 말해도 이해하고 들으라’고요.

얼마나 심하게 얘기하셨길래.

미안하지만 솔직히 나 너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네가 이 팀에 1년 반을 선수로 있었는데 내가 이름조차 기억 못 할 정도면, 야구 못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기껏 힘들게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놓고 다시 야구를 하려고 하냐. 게임도 제대로 못 나갈 텐데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 이해를 못 하겠다. 한번 잘 생각해 보라. 그러고 끊었는데 며칠 뒤 이번엔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그때도 솔직히 말씀드렸죠. 만약 내 자녀라면 난 못하게 한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친구도 사귀고 강의도 듣다 보면 얼마든지 앞으로 좋은 미래가 펼쳐질 수 있는데 다시 야구에 붙들리게 할 거냐. 다시 한번 설득하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설득이 됐나요.

그래도 하겠다고 하더군요. (웃음) 부디 우리 선수들이 야구를 하는 동안에 최선을 다하고, 유니폼 벗을 때는 조금의 미련도 남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끔 야구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이 사회인 야구에서 뛰는 모습을 보거든요. 이제 스물 한두 살 먹은 친구들이 알루미늄 배트로 홈런치고 좋다고 웃고 있는데,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나가서 열심히 자기 일 하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하는 거면 몰라도, 힘들게 뒷바라지해서 야구시키고 대학까지 보내주신 부모님 생각도 해야죠.

“감독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감 느껴…올해 영동대 야구는 다를 것”

올 시즌 영동대의 반등을 자신한 김철기 감독(사진=베이스볼코리아)

올해 영동대에서 주목할 선수는 누가 있습니까.

올해는 2학년인 김민주, 박준영, 오승윤. 그리고 이상화, 전다민. 그다음으로 강승구, 윤승현까지 하면 한 7~8명 정도가 프로 지명권이라고 봐요. 여기서 과연 몇 명이나 실제로 지명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5명 이상 지명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점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김민주는 실력만 보면 고교 때도 충분히 지명을 받을 만한 선수였어요. 박준영은 사이드암 투수인데 대학에 와서 볼 스피드와 게임 운영 능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승윤도 좌완에 140km/h 중반대 공을 던지고요. 이상화는 프로팀 상대 연습경기에서 홈런을 칠 정도로 공격력이 좋은 중장거리 우타자입니다. 전다민은 처음 입학했을 때 몸이 약해서 군대부터 보낸 친구인데, 다녀와서 몰라보게 힘이 좋아졌어요. 발도 빠르고 어깨도 강하고 야구 기술도 좋습니다. 그리고 윤승현은 고교 시절 구속이 140km/h 대였는데 지금은 150km/h 이상을 던집니다.

말씀만 들어선 5명은 무난히 지명받을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5명 정도는 지명받아야 우리 팀이 다시 살아난다고 보거든요. 못해도 3명은 지명됐으면 합니다. 안 그러면 선수 수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아요.

최근엔 4년제보다 2년제를 선호하는 선수가 많다고 알고 있는데, 선수 수급이 어렵다는 건 의외입니다.

아무래도 새로 창단하는 학교들은 1학년 때부터 실전에서 뛰게 해준다고 하니까 그쪽을 선호하는 거죠. 다른 학교보다 훈련량이 많다고 알려진 것도 있고요. 우리가 매년 신입생이 4, 50명씩 들어왔어요. 그런데 올해는 16명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만약 내년에도 이래서는 야구부가 위험할 것 같아요. 어느 때보다 큰 위기의식을 갖고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영동대는 다를 겁니다. 재미있을 거에요. 지켜봐 주세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영동대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선수들이 먼저 오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영동대로 오면 프로에 갈 수 있다는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4년제 학교에 못 가서 마지못해 오는 곳이 아니라, 4년제에 합격했어도 그쪽을 포기하고 여기를 선택할 만한 그런 학교가 됐으면 합니다. 메이저 대학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가 우리 학교에 와서 2년 동안 승부를 거는, 야구 하나만큼은 확신을 주는 학교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베이스볼코리아> 4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입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