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꾸면 한화도 달라질까

감독 바꾸면 한화도 달라질까

편집부

[베이스볼코리아]

KBO리그에 전해 내려오는 ‘5월 11일 괴담’의 이번 희생자는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었습니다. 2021년 5월 11일 경질당한 허문회 감독(전 롯데), 2022년 5월 11일 경질당한 이동욱 감독(전 NC)에 이어 올해는 수베로 감독이 11일 밤 구단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화는 이날 경기종료 직후 낸 보도자료를 통해 수베로 감독의 계약 해지와 최원호 퓨처스 감독의 1군 사령탑 선임 소식을 전했습니다. 수베로 감독과 함께 데려온 외국인 코치진도 전원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이번 한화의 감독 교체는 시기적으로 묘한 타이밍에 이뤄진 감이 있습니다. 보통 감독 경질은 팀이 한창 연패에 빠져 도무지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카드입니다. 그러나 한화는 감독 교체 소식을 12일 삼성전에서 완승을 거둔 직후에 발표했습니다. 최근 6경기 5승 1패로 팀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와중에 이뤄진 감독 교체입니다. 한화 선수단은 승리의 쾌감을 한껏 만끽하면서 인천 원정 이동을 준비하다가 감독 교체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 소식통은 “선수, 코치 중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다들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수베로 감독도 이날 통보받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경기 내내 보여준 모습이 평소와 똑같아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수베로 감독은 경기가 끝난 직후 구단 대표이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고 합니다. “수베로 감독은 워낙 감정 표현이 솔직한 스타일이라, 자신의 경질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분명히 티가 났을 것이다.” 앞의 소식통이 들려준 얘깁니다.

보통 프로야구단에서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건 구단보다 훨씬 윗선, 이른바 ‘어른의 사정’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이번 수베로 감독의 경질도 이날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 아닙니다. 야구계에 따르면 한화는 앞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내리 6연패를 당해 최하위로 추락했을 때 감독 교체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그룹의 재가가 바로 나오지 않았고, 발표가 미뤄진 사이 팀은 연패에서 벗어나 반등을 시작했습니다. 그룹의 재가는 11일에야 뒤늦게 떨어졌고, 한화는 곧바로 이날 오후 최원호 감독을 대전으로 불러 1군 감독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수베로 감독에겐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알렸습니다.

한화가 수베로 감독을 중도 경질한 이유는 결국 ‘성적’입니다. 2021년 출범한 수베로호 한화는 지난해까지 두 시즌 모두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부임 첫해엔 약한 팀 전력과 ‘리빌딩’이란 명분 덕에 소위 ‘까방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2년 차인 지난해엔 첫해보다도 더 떨어진 승률 0.324에 그쳤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한화는 지난 시즌 뒤 내부적으로 사령탑 교체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혁 단장이 “2023시즌 한화 감독은 수베로”라고 못 박으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감독 교체설’은 올 시즌 초반 한화가 또다시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결과도 결과지만, 감독의 역량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면서 비판 여론에 불을 질렀습니다. 구단 안팎에서 ‘수베로 감독이 오래 못 갈 것 같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입니다.

최원호 감독의 감독대행 시절 모습

수베로 감독의 중도 경질은 ‘한국식 리빌딩’의 한계를 잘 보여줍니다. 수베로 감독 선임 당시 한화는 “수베로 감독의 팀 운영 철학이 젊고 역동적인 팀 컬러를 구축하고자 하는 구단의 목표에 부합한다”면서 변화를 외쳤습니다. 특히 수베로 감독이 내세운 “실패할 자유”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의 팀 리빌딩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화의 인내심은 3년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한계에 달했고, 결국 리빌딩하라고 데려온 감독을 성적 때문에 자르는 부조리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야구계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한화의 부진을 수베로 감독 개인 책임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베로 감독은 2020시즌 승률 0.326짜리 최약체 전력을 물려받았다. 지난해엔 외국인 투수들이 줄부상을 당했고 올해도 외국인 농사가 실패로 판명 났다. 이런 팀을 맡겨놓고 성적을 내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시즌 전 취재에 응한 방송 해설위원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화의 순위를 ‘최하위’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

‘육성 전문가’를 경질하고 새로 선임한 감독 역시 ‘육성 전문가’라는 점도 다소 의아한 대목입니다. 신임 최원호 감독은 2020년부터 한화 퓨처스팀을 맡아 선수 육성 파트를 이끌어 왔습니다. 부임 이후 최 감독이 보여준 능력과 성과를 높게 평가한 한화는 작년 11월 퓨처스 감독에게는 이례적으로 3년 재계약을 선사했습니다. 당시 한화는 “현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서산 퓨처스팀의 육성 시스템을 긴 안목으로 보완, 지속해 나가겠다는 구단의 의지가 담긴 행보”라고 홍보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 구단이 기대하는 최 감독의 역할은 분명 ‘육성 전문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최 감독에게 육성이 아닌 1군을 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최 감독을 소개하는 한화의 문구도 달라졌습니다. 11일 보도자료에서 한화는 최 감독 선임 이유 중 하나로 “퓨처스 팀에서 보여준 이기는 야구에 초점을 맞춰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팀 운영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합니다. 육성 전문가가 하루아침에 ‘이기는 야구’를 위한 승리 청부사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물론 최 감독이 초보 감독은 아닙니다. 2020년 6월부터 감독대행을 맡아 거의 정규시즌의 80%에 가까운 114경기를 지휘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만 당시 성적은 39승 3무 72패 승률 0.351로 ‘이기는 야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화로선 당시의 경험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르게 1군 경기에 적응하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해야겠습니다.

올해초 한화가 연패 중일 때 만난 한 야구인은 “한화 차기 감독으로 누가 올지 궁금하다”며 “누가 됐든 다음 한화 감독은 천운을 타고난 행운아”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성적이 바닥을 친 뒤라 더 내려갈 곳이 없고, 그래서 순위를 몇 단계만 끌어올려도 바로 ‘명장’ 대접을 받을 거란 예상입니다. 문동주, 김서현 등 특급 유망주들을 보유한 것도 한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이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물급 인사들이 한화 감독직을 탐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화는 최원호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으면서 외부에서 팀을 흔들 가능성을 차단했습니다. 다만 수베로 감독이 그랬듯이 감독의 계약기간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성적 때문에 몸값 비싼 외국인 감독을 교체한 만큼, 그 부담감은 고스란히 후임 감독에게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부담 없이 팀을 이끌었던 대행 시절과는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한화와 최원호 감독이 수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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